경영관리/경영관리
마르크스를 전공한 통계청장
그 흔한 김씨
2018. 9. 10. 17:34


최근 ‘분식 통계’ 논란 끝에 신임 통계청장이 된 강신욱 청장이 1980∼1990년대 서울대에서 마르크스경제학(마르크스주의)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990년 석사 학위 논문과 1998년 박사 학위 논문 모두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카를 마르크스의 시각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강 청장의 논문 지도교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했던 고(故) 김수행 전 서울대 교수였다.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 통일혁명당 간첩사건에 연루돼 힘든 시기를 거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에 이념적 토대를 제공한 마르크스의 사상에 푹 빠져들었다. 전두환 정권에 분노하며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했던 일부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생은 1989년 김 전 교수를 서울대 정교수로 채용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당시 김 전 교수의 영입을 주도했던 대학원생들이 바로 소득주도성장론의 주인공이자 박사 과정에 있던 홍장표(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석사 과정에 있던 강 청장이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은 착취론과 계급투쟁론이다. 세상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나뉘고,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할 뿐이며 결국 노동자의 투쟁으로 자본주의를 멸망시킨다는 내용이다. 홍 전 수석이나 강 청장이 아직도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 있을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1980년대는 독재 정권의 탄압 속에 정의감에 불타는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또는 운동권 선배에게 이끌려 자연스럽게 마르크스주의를 접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1990년대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경제학의 비주류로 빠져나갔다. 추종하던 다수 학자와 학생도 비현실성을 인정하며 마르크스와 이별했다. 학자로서의 논문만 보면 강 청장도 노선을 바꾼 것 같다. 대신 그가 천착한 곳은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 문제였다.
확실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온 강 청장의 연구 인생 중 통계청장 감으로 볼 만한 흔적은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있다면 여러 논문에서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활용해 소득 불평등의 추이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강 청장은 새 통계청장으로 발표되기 보름 전 공개한 ‘최근 소득 불평등의 추이와 특징’ 자료에서 이례적으로 통계청이 가야 할 길을 맺음말에 담았다. 그는 “(통계청이) 소득분배를 개선하기 위한 각종 정책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자료의 생산이 속히 재개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말대로라면 강 청장은 앞으로 소득주도성장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내부 자료를 대거 방출할 것이다. 만약 청와대가 이를 위해 강 청장을 통계청장으로 선택했거나 실제 강 청장이 통계청 내부를 흔든다면 곤란한 일이다. 통계청은 특정 정권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 통계청은 한국은행과 마찬가지로 중립성과 객관성이 생명이다. 숫자를 입맛대로 뽑아쓰고 싶은 마음은 어느 정권이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독재 정권에서나 실행할 수 있는 일이다.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비판을 듣지 않으려면 통계청을 앞세워 소득주도성장론을 방어하려는 꼼수는 버려야 할 것이다.



- 김만용 경제산업부 차장 <뉴스와 시각> 문화일보 2018.09.07 오후 3:11